첫사랑보다 풋풋하고 애틋한 ‘동만과 점순’ 두 노년 부부가 부르는 마지막 사랑의 노래

[JTN뉴스 서영희 객원기자] 지난 10년간 중년 배우들의 열연으로 진한 감동과 눈물을 선사한 연극 ‘늙은 부부 이야기’가 음악극 ‘노래하는 늙은 부부 이야기'로 새롭게 태어났다.

2003년 초연된 '늙은 부부 이야기'는 청춘보다 아름다운 황혼기 부부의 마지막 사랑을 통해 세대를 초월한 감동을 안겨온 작품.

10주년 기념 음악극으로 재탄생한 '노래하는 늙은 부부 이야기'는 극단 ‘오늘’의 위성신 대표가 연출을 맡았으며, 연기파 배우 정종준과 사미자, 그리고 최주봉과 우상민이 가세한다.

더불어 2인극에서 볼 수 없었던 멀티 남,녀 배우 김시권과 황지영의 감초 연기도 눈길을 끈다.

나이를 초월한 진정한 로맨티스트 신사 ‘박동만’역 정종준, 욕쟁이 할머니지만 부드럽고 사랑스런 여자 ‘이점순’역 사미자, 두 주인공을 지난 4일 공연 직후 만났다.

-다음은 두 배우와 함께 한 일문일답.

▲ 이번 10주년 기념 음악극이 기존의 2인극과 비교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사미자: 원작에서는 노부부의 잔잔한 사랑을 보여줬다면 이번 공연에서는 사이사이에 멀티 남녀가 등장해요. 극의 흐름을 방해하면서도 관객을 즐겁게 해주는 역할이죠. 객석 분위기를 엄청 신나게 만들어요. 그 속에 다양한 인간사를 소재로 다루죠. 그 전까지는 차분한 분위기에서 연기하다가 버라이어티한 음악극 형식으로 바뀌고 공연 시간도 2시간으로 늘어나면서 처음엔 좀 연기하기가 껄끄러웠어요. 그런데 막상 총연습에 들어가니까 음악극 형식도 나름대로의 깊은 맛이 있어요. 적응하다 보니 더 신이 나고 슬픈 장면에서는 더 슬프기도 합니다.

정종준: 두 사람이 할 때는 1시간 30분이 채 안 걸리는데, 음악극 형식으로 바뀌면서 40분이 늘어났죠. 춤과 노래를 동시에 해야 하는 부분에서 나름대로 어려움이 있고, 게다가 초반이라서 아직은 완전하게 몸에 좀 익지 않았는데 그래도 며칠하니까 이제 좀 몸에 익는 것 같고 차츰 나아지네요.

▲ 공연을 준비하면서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

사미자: 대본은 그대로지만 멀티가 사이사이에 들어오니까 머리가 나쁘면 "우리가 뭐했죠?"라고 잊어버릴 수도 있는데 다행히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고 해냈어요. 다만 저는 연식(나이)이 좀 됐잖아요? 그런데 제작진이 저를 20~30대랑 똑같이 취급해요. 춤추고 바로 원극으로 들어갈 때 얼마나 숨이 차는 줄 아세요? 그런 모습이 객석에 비춰지면 관객들은 또 얼마나 불안하겠어요. 그럴 땐 속으로 깊이 한 박자 쉬고 평소 대사대로 들어가요. 그게 얼마나 어려운데 완전히 젊은 배우 취급을 하니까 원망스러울 때가 있어요. 그러다가도 누가 날 이렇게 젊은이로 취급해 줄까? 얼마나 고마운지, 그렇게 고마워서 더 열심히 하는 거지요.(웃음)

▲ 이번 무대를 위해 그동안 얼마나 연습했나.

정종준: 한달? 연습량이 생각보다는 적었어요. 욕심 같아서는 한 보름정도라도 더 했으면 싶었는데 조금 성에는 안 찼어요.

사미자 : 그래도 우리는 이전에 했던 작품에다 뮤지컬 형식의 멀티를 넣은 거고, 처음하는 최주봉씨나 우상민씨도 하는데 우리는 4~5년을 했던 거니까 거기에 더 집어 넣은 걸 뭐라하면 안되겠다 싶고, 우리가 더 잘해야지 하는 경쟁심이 생기곤 해요. 솔직히 연기자는 그런 게 있어요. 이 연극을 하도 오래해서 우리는 물 흐르는 것 같이 흘러요. 정종준씨는 상대역이 바뀌는 것에 대한 묘한 기대감이 있을 거에요. 이 사람은 어떨까 하는 기대? 연기자는 그렇죠.

정종준 : 불안하기도 해요 사실은 우상민씨와는 처음하는 거라서 대사가 틀릴 수도 있거든요? 하려면 다시 맞춰봐야 해요.

▲ 극중에서 랩도 하시고 춤도 추시던데 특별한 지도를 받으셨는지.

정종준: 기존 원곡들도 있지만 음악 연출가가 새로 작곡한 곡도 있고 안무팀이 따로 와서 연습은 하는데 몸은 잘 안 따라가지만 해 보는데 까지 해봤습니다.

사미자 : 저는 끝까지 틀리는게 ‘욕송’이에요. 평상시에 욕을 못해요. 그래서 반응이 적다 싶으면 “박수가 없네. 한번 더 할까?”하면 반응이 와요. 마당극은 아니지만 그런 애드리브를 통해 관객과 함께 즐겨야 해요. 조금 부족해도 그렇게 넘어가야지 욕이 만날 틀리고 생각이 안나네요.(웃음)

▲ 극중 캐릭터는 실제 성격과는 어떤가요?

사미자: 사람은 변하지 않나 봐요. 연기를 해도 거친 욕쟁이 할머니는 안 나와. (욕이) 안나오니까 대사로 보완하는 수 밖에는 없는데 그렇다고 “뭐~ 이랬어 저랬어~” 거칠게 하면 싫어한다고. 그러니까 여자가 됐다가 애교도 부려봤다가 이런 보통의 여자로 가야지 주인공이 너무 미운털만 박히면 안 이뻐요. 주인공답게 그렇다고 내가 아주 예쁘게만 하는 건 아니고.

정종준: 제 삶 자체가 살갑지 못해요. 조금 구수하게 들리는 건 전라도 사투리라서 그래요. 일부러 임자를 자네라고 하거든요? 저는 서울에서 났지만 집안이 전라도라서 부모님을 보고 자라서 연세 드신 분들은 남편이 아내 부를 때는 “자네~ 어쩐가~ 저쩐가~” 저는 듣기 좋더라구요. 원작가가 써놓긴 써놨는데 제대로 사투리는 안 써놨어요. 전라도 사투리라는 맛만 내놨는데 “알아서 할께요” 했더니 그렇게 하세요 해서 제가 했죠.

▲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대사가 있다면.

정종준: 3막에서 “죽은 마누라에게 결혼한다고 했다”하니까 점순이가 “뭐라 그러더냐”고 물어요. 그럼 동만이 “다 늙어서 혼자 살지 말고 결혼하라고 그러대?” 그 대사를 하면 현실에 만약 내가 그랬을 때 나는 어떻게 할까~ 그런 생각도 나구요. 전 그래서 좋아요.

사미자: (끼고 있는 반지를 보이며) 나는 이 반지를 낄 때마다 눈물이 나요. 우리 엄마가 나한테 석돈짜리 금반지 하나 남기셨거든. 이 반지를 낄 때마다 엄마가 생각나고 여기부터 눈물이 나와요. “반지 딱 맞네! 아~ 고와라 ~ 고맙수” 그 세 마디에 극의 모든 감정은 시작이 돼. 세 마디 할 때 노인네가 평생을 반지 하나 없이 살다가 그거 하나 딱 껴주는 장면에서 뼈 속 깊이 슬픔이 와요. 그때부터 감정을 잡고 가는 거에요. 여기 있는 사람들도 같이 느끼면 좋은데...

▲ 사미자씨는 고희를 넘기고도 여전히 신혼부부 못지 않은 닭살 커플로 유명하다. 비결이 있다면.

사미자: 나는 말 한마디를 해도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주기가 싫어요. 이 말을 하면 남편은 기분 나쁘겠지 하고 우회적으로 말해요. 정말 화날 때는 싸우겠구나 싶어 입을 딱 다물어요. 현상유지를 하는 거라 종착역이 어딜 지는 몰라도 기왕이면 우리가 50년을 살았는데 앞으로 남은 세월을 아껴가면서 서로 더 부축이며 살아야지 이런 생각을 그래도 60대부터 했어요. 그러니까 나머지 노년이 조금 즐거운거야. 안 그러면 노년이 슬퍼요.

▲ 2006년 이후 이 작품에 계속 참여하고 계신데 앞으로도 출연 섭외가 들어온다면?

정종준 : 뭐 기약은 없는 거죠.(웃음)

사미자: 사람들이 내가 나이가 먹은 줄 모르니까 사실 나도 몰라요. 그래서 사미자의 '늙은 부부 이야기'는 더 놓치고 싶지가 않아요. 내가 건강이 허락하는 한은 하고 싶어요. 내가 필요없고 다른 연기자로 바꿔야 할 때는 깨끗하게 내줘야겠죠.

▲ 사미자씨는 연기인생 50년이 다 되어 가는데 연기에 대한 철학이 있다면.

사미자: 연기생활 48년째에요. 철학까지는 아니어도 항상 조심스러운 게 연기에요. 내가 연기를 펼칠 수 있는 그런 작품이 없으면 어떻게 살까 정말 불안해요. 길을 가다가 돌뿌리에 체일 수도 있지만 길 위를 걷듯이 항상 작품이 따라와 줬으면 하는 바람이고 연기라는 건 내가 선택되어야 하기 때문에 ‘선택’을 당하고 싶은 거죠. 항상 자세는 되어 있어요. 어떤 역할 어떤 거라도 나는 나를 필요로 한다면 합니다.

▲ 이번 연극 무대를 통해 정종준씨가 느끼는 연기에 대한 생각.

정종준: 솔직히 말하면 연극보다는 방송을 해야만 수입이 되는데요.(웃음) 철없을 때 자신감이 펄펄 넘칠 때는 내가 최고라고, 최고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는데 입에 바른 소리가 아니라 정말 어렵더라구요. 연기가 어렵고 새 대본을 받으면 대체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이 생기고 짧은 대사 한마디도 두렵더라고요.

이 작품도 마찬가지로 오래해서 훈련 오래 받은 훈련병들 아무때나 꼭 찌르면 자세가 나올 수 있을 만큼 익숙해졌는데 이번에 조금 형식이 바뀌면서 이대로 그냥 매너리즘에 빠져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대사마다 이 대사는 조금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나름대로 연구를 하곤 합니다.

▲ 이 작품은 실버 연극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이번 멀티 4인 음악극 형식은 젊은 관객층을 의식한 듯하다. 끝으로 젊은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정종준: 어차피 오랫동안 산 부부들 보다는 새로 인생을 시작하는 젊은 부부들이 우리도 정답게 서로 위해주면서 오랫동안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게 되고, 실제로 대학로에서 공연할 때도 보면 30~40대 부부들이 와서 보고 가는 모습을 보면 그런 게 느껴져요. 부부간의 정이 더 각별해진다 할까? 젊은 사람들이 보기에도 아주 좋아요.

사미자: 맞아요. 젊은 사람들이 봐야 돼요. 그래서 자기네 걸어갈 앞으로의 인생, 자기네가 부모한테 어떻게 해야할 지, 부모가 재혼을 하더라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세로 봐줘야 된다고 생각해요.

요즘엔 재혼한 사람들도 많을 테고 황혼의 인생을 좀 더 아름답게 살아갈 줄 아는 현명함을 여기서 배워갔으면 좋겠어요. 요즘 공연되는 연극이 많지만, 우리 연극이야 말로 우리 둘 사이처럼 순수하고 여러분에게 인생이 무언가를 가르쳐 주고 거기다가 재미도 있는 연극입니다. 내가 작가에게 그랬어요 “당신 어떻게 이런 작품을 써냈수~ 이런건 앞으로 100년이 가도 변하지 않고 인생사 인간사 걸어가는 길이니까 언제든지 공연할 수 있는 거요”라고. 여러분들도 이 기회를 놓치시면 정말 후회할 수 있는 우리가 꼭 봐야할 인생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내가 너무 홍보 했나보다.(웃음)

서로 의지할 것 없이 외롭던 두 노인이 서로의 마음을 열고 사랑을 나누는 과정을 노래하는 ‘늙은 부부이야기’에는 현재 우리의 모습과 미래에 우리가 닮고 싶은 부부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다.

또한 인생의 황혼기에 찾아온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통해 황혼의 인생을 아름답게 살아갈 줄 아는 현명함을 배웠으면 하는 두 배우의 바람이 숨어 있다.

이번 작품은 감동적인 음악과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으로 공연을 보는 모든 이들에게 깊은 감동과 울림을 선사한다.
 
인생의 황혼기에 찾아온 젊은이들의 사랑보다 더 애틋하고 아름다운 노부부의 사랑 이야기 '노래하는 늙은 부부이야기'는 오는 12월 31일까지 정동 세실극장에서 공연된다.

JTN 서영희 문화 객원기자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jtn.co.kr

<ⓒ 1+α 문화미디어 JTN NEWS(www.jtn.co.kr) 무단전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