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스하고 여자는 떠나면 잡는 게 아니란다.

[JTN뉴스] 사운드 엔지니어인 남자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상처한 아버지, 고모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어느 겨울날 남자에게 라디오 PD인 여자가 봄바람처럼 다가옵니다. 그리고 눈이 녹아 꽃이 피듯 그들은 서로에게 살며시 스며듭니다. 그렇게 겨울이 가고 봄을 지나 여름이 옵니다. 봄은 온 적도 없이 향기마저 거두고 떠났습니다. 남자는 그 봄을, 지독히 아름다웠던 봄을 차마 보낼 수가 없습니다.

남자는 속절없이 가는 계절의 뒤꽁무니를 맹렬히 뒤쫓습니다. 걷잡을 수 없는 미련과 집착으로 남자는 송두리째 흔들립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그의 할머니가 산들바람처럼 이야기하지요. “버스하고 여자는 떠나면 잡는 게 아니란다.” 할머니는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로 시작해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로 끝나는 무심한 노래를 잘도 흥얼거렸습니다. 흐르는 시간을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요. 흐르는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요. 시간은 바람 같은 거라서 자꾸만 마음을 비켜가고 방향을 바꾸는 걸요.

이윤기 작가는 “시간에 방울을 달아놓으면, 세월을 어찌 보내느냐에 따라 은방울로 되기도 하고 금방울로 되기도 한다”고 했지요. 어쨌든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시간이 달아나지 못하게 방울을 달아놓는 거예요. 방울을 달아놓고 딸랑딸랑, 할 수 있는 한 산뜻하게 건너는 거예요. 어떤 방울이 될는지는 괘념치 않도록 해요. 누구를 만났든, 무슨 일이 있었든, 그것들은 다만 과정일 뿐이므로. 과정 자체가 삶이므로. 그리고 사랑은 그 과정 속에서 한 뼘 성장하는 일에 다름 아니므로.

 
이 영화의 대사 대부분은 배우들의 애드리브 혹은 현장에서 고친 것이라고 합니다. 라면 끊일 때 여자주인공 이영애 씨가 생라면을 먹는 장면이나, 수북이 쌓인 밥을 보며 “내가 못 먹을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것 모두 애드리브라고 하네요.

권선혜 book@j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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