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다른 구성, 저예산 실험으로 완성된 홍상수 감독의 11번째 장편영화

**감독 홍상수/제작 전원사/80min/청소년관람불가/9월16일/한국**

[JTN뉴스 현화영 기자] 영화과 학생인 '옥희'(정유미 분)은 과거의 남자인 '송교수'(문성근 분)와 현재의 남자친구 '진구'(이선균 분)와 2년이란 시간 차이를 두고 비슷한 계절에 함께 아차산을 올랐던 기억을 떠올리며 영화 한 편을 완성한다.

똑같은 산책길, 같은 상황의 반복이지만 그는 다른 현실에 놓인(예를 들어, 유부남과 총각) 두 연인에게서 때로는 같은, 때로는 다른 감정을 느낀다.

이 에피소드는 홍상수 감독의 '옥희의 영화' 속 등장하는 4번째 이야기다. '옥희의 영화'는 옥희ㆍ진구ㆍ송교수라는 동일한 세 인물이 등장하지만, 서로 다른 상황 속에 놓여 있어 마치 다른 인물들인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4개의 단편으로 구성돼있다. 감독은 단편들을 구분 짓기 위해 에피소드들 사이에 같은 배우들의 이름이 반복적으로 등장함에도 일일이 크레딧을 넣었다. 

같은 인물들이 같은 시공간에서 경험하는 이야기들을 각자 다른 시점으로 풀어나가는 방식을 종종 선보여온 홍상수 감독이 이번에는 전혀 다른 네 가지 시공간에 존재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독립된 단편으로 엮은 것. 전작들에서는 인물들이 결국 하나의 접점을 통해 만나게 된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그런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각각의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인물은 같은 수도, 혹은 전혀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 이런 미세한 겹침과 차이들이 영화를 보는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어차피 사람이란 변하기 마련이고, 사람의 기억이란 결코 연속적이지 않다. 삶은 그렇게 흘러간다.

평소 정해진 각본과 하나의 주제를 선호하지 않는다는 홍상수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역시 현장에서 떠오르는 생각들과 대사들을 즉흥적으로 카메라에 담아냈다. 유별나지 않아 촌스럽게 느껴지는 단순한 카메라워킹과 간혹 등장하는 배우들의 어색한 연기가 보는 이의 얼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흐뭇한 웃음을 자아내는 것을 보면 홍상수 감독의 역량에 다시 한 번 혀를 내두르게 된다.

'옥희의 영화'는 개봉일 확정되기 전 지난 12일(현지시간) 막 내린 '제67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오리종티 부문 폐막작으로 선정돼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오리종티 부분은 '지평선'이란 의미의 이태리어로, 새롭고 실험적인 경향의 영화들을 모아놓은 섹션. '옥희의 영화'는 새로운 구성, 단 4명의 스태프, 5천만원의 저예산이라는 실험성으로 이탈리아 베니스 현지에서 시선을 끌었다.

홍상수 감독은 돈이 없으면 영화를 못 찍는 우리나라, 아니 세계 영화업계에 '그럼에도 예술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작가주의적 자세를 견지하며 묵묵히 영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하하하'에 이어 '옥희의 영화'까지 올 한 해 1편도 아닌 2편이나 그의 영화를 스크린을 통해 볼 수 있어 관객들은 참 행복한 것 같다. 생활에 대한 소소한 발견들,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는 메시지가 입가에 웃음을 번지게 한다. 그게 바로 홍상수 감독의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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