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3월, 전 세계 수억 명의 시청자들이 지켜보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일본인들에게 엄청난 자긍심을 느끼게 만드는 사건이 일어났다. 일본의 거장 감독 구로사와 아키라가 평생공로상을 수상한 것이다. 그건 단순한 시상이 아니었다.

할리우드를 이끄는 젊은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와 조지 루카스가 마치 옛 스승을 모시듯 에스코트했고 마침 80세 생일을 맞은 구로사와를 위해 시상식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구로사와는 평생공로상을 받고 “영화는 진정 놀라운 표현 수단이지만 본질을 꿰뚫어 핵심에 도달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지금까지 50년 가까이 영화를 만들어 왔지만 나는 아직도 영화를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당시 나는 감독 데뷔를 준비하던 중이었는데, TV로 그 장면을 보고 큰 자극을 받았다. 그래서 나중에 구로사와의 영화를 모두 찾아보고 그에 관한 책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데뷔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스스로 아직도 영화다운 영화를 만들지 못했다고 느낄 때마다 그의 말대로 영화의 본질을 꿰뚫어 핵심에 도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생각한다.

그러면 저절로 ‘구로사와는 어떻게 무려 60여 년 전 '라쇼몽'(1950)이나 '7인의 사무라이'(1954) 같은 걸작을 만들 수 있었을까?’ ‘어떻게 영화를 연출했기에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인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을까?’란 질문에 다다른다. 마침 이번에 구로사와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그의 주요 작품들을 필름으로 상영한다고 하니 다시 한 번 그의 영화를 보면서 나 자신을 반성하고 마음을 추슬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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